97. 딸의 꿈을 실현하신 어머니

1994년 10월 21일 아침. 우리나라에는 엄청난 사고가 있었습니다. 성수대교가 끊어진 것입니다. 이때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1세의 이승영 양은 성수대교 상판과 함께 20여 m 아래로 떨어진 16번 시내버스 안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생 실습을 위해 강북 초등학교에 버스로 출퇴근한 지 닷새만의 일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오열 속에 딸의 유품을 챙기던 어머니 김영순 씨는 승영 양이 남긴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란 구절 밑에 빽빽이 적어놓은 '14가지 소원'. '장학금을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한 명 이상을 입양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 11개월 전 군인이던 남편을 과로사로 잃고 힘들어하던 어머니였습니다. "승영아, 네 소원을 이 어미가 모두 이루어주마."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어머니는 고려대 의대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습니다. 손에 쥔 보상금 2억 5천만 원은 전액 교회에 장학금으로 기부해 '승영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장학금을 만든다'라는 딸의 소망을 이룬 것입니다. 인천 부평구 신곡1동 백마마을 산곡중학교 뒷골목에는 승영장학금을 받은 최만재(47)씨가 '작은 손길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무허가 월세 건물이지만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65세 이상 노인 11명을 모아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공동체입니다. '복지마을을 만든다'라는 승영씨의 소원은 이렇게 장학생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라는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군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전방 부대를 다닌 어린 시절 기억이 만든 소원입니다. 승영장학회는 강원도 인제군 서흥리의 한 포병연대에 전천후 이동도서관 차량을 기증했습니다. 승영양의 어머니는 사고 직후인 95년 초등학교 때 딸이 쓴 詩를 '연기는 하늘로'란 제목의 책으로 묶어 출간했습니다. '신앙 소설을 쓴다'라는 소원도 이렇게 실현되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한다'라는 소원 역시 장학회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 보급을 시작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라는 소원은 그녀의 동생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승영양이 하늘나라에서 크나큰 슬픔을 딛고 딸의 꿈을 실현시킨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승영양이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히 평화의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