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그 죽음으로부터 부활이 온다. ------- 이명기 수녀(성심수녀회)

이 찬란한 봄의 축제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고난의 여정을 함께 걷고 있다. 길가에 만개한 꽃들은 단순히 봄이 와서 핀 것이 아니다. 지난 가을 차가운 바람 속에서 땅에 떨어져 묻힌 씨앗들이 긴 겨울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다. 부활을 향한 우리의 여정 역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단계를 거쳐 천천히 완성되며, 부활의 영광이 임하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활이 도래할 때, 우리는 죽음의 의미와 그 필연성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순간,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 혹은 '무엇에 대해 죽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깊은 성찰로 초대받는다. 욥은 그가 겪었던 오랜 고통의 끝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그 회복을 통해 과거의 상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축복을 받는다. 성경은 그의 재산이 갑절로 늘어나고, 친지와 이웃들의 축하를 받으며, 공동체와의 화해 속에서 새로운 자녀를 얻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 회복이 단순한 보상의 반복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부활이 지닌 깊은 의미를 놓치게 될 것이다. 욥의 회복은 단순히 '되돌림'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위험과 상실을 내포한 변화의 과정이었다. 새롭게 얻은 자녀들은 단순히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다. 상실은 결코 대체될 수 없으며, 욥의 삶은 이전과 결코 동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가 140까지 장수하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갔을지 바라볼 수 있다. 아마도 욥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쉽게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세상의 도전 속에서 날마다 자기 정화의 길을 걸었으며, 이전처럼 자녀들의 죄를 두려워하여 그들을 보호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한 이후에야 비로소 '무엇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지', '왜 사랑하는 일에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위해 자기를 버려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욥은 더 이상 도덕적 흠결이 없는 삶을 유지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사회적 존경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는 모든 것을 잃어본 자로서 인간 존엄성의 강렬한 의미를 깨닫고,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을 경멸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욥이 가장 비천한 상태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욥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으며, 그 은총은 단순히 물질적인 회복을 넘어 영적 깊이를 동반하는 변화로 나타났다. 이때, 욥은 하느님의 창조 세계 속에서 그 어떤 인간의 손길도 닿지 않은 야생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목격하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섭리 속에서 불가사의한 존재들을 통해 욥에게 그분의 궁극적인 주권과 무한한 지혜를 드러내셨다. 욥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적 섭리와 인간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이로써 그의 영성 지도(Atlas of Spirituality)가 깊고 넓게 확장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최종적인 현존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주님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자아로부터 소외되고 타인에게 거부당하며 죽음에 내몰린 이들이 마침내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새로운 삶과 시야를 얻게 된다. 이 고백은 단순한 이론적 인식이 아니라, 고통과 상실을 겪은 자의 깊은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욥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부활을 향한 신앙의 진전성과 그 영적 깊이를 깨닫게 된다. - 어둠이 찾아올 때 두려워하지 말라. 어두워져야 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