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不守自性隨緣成 -----------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자기 성품을 고집하지 않고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은 본래의 성질이라고 부를 만한 것없이 그때그때 인연 따라 드러날 뿐입니다.
인연을 떠나 존재하는 절대적인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대도 사람들은 그중 하나의 현상을 움켜쥐고 버리지를 못합니다. 사진 찍듯이 마음속에 고이고이 간직해 두고 그 형상이 사라진 뒤에도
잔영에 집착하고 매달려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담배를 끊겠다던 남편이 담배를 피우면 아내는 '당신 또 담배 펴요?' 하고 다그칩니다. 남편이 담배 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저 '여보, 담배 피지 말아요' 이렇게 말하면 충분할 텐데 말입니다. 아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편이 담배를 끊겠다고 말한
과거에 대한 잔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이 없어져야 현재에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대응한다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
집니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비교적 그런 편입니다. 아이들은 방금 전에 친구와 심하게 다투고 토라졌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고 풀어져서는
다시 또 어울리곤 합니다. 낯선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도 아이들은 금방 친구를 사귑니다. 어른들이 빈부 계층이나
민족이나 종교 같은 여러가지 상에 매인 데 비해 아이들은 그런 상이 훨씬 적습니다. 슬퍼서 우는 것도 그때뿐이고 기뻐서 웃는 것도 그때뿐,
늘 가볍습니다.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듯 인연 따라 그때그때 바뀌어야 문제가 없습니다. 인연 따라 사는 삶이 집착이 없는 삶이고, 그것이 바로
無爲의 삶입니다.
이렇듯 모든 법은 공하여 본래의 自性이란 것이 없습니다. 無我이므로 인연 따라 갖가지 법으로 드러나되, 그 한량없는 법은 실체가
없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텅 비었으니 거기에서 오히려 수없는 법이 일어납니다. 무위법이 인연따라 차별로 드러나는 도리가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