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須陀洹 에 대하여 -----------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聲聞四果의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는데 須陀洹은 그 중 첫 번째 지위를 말합니다. 須陀洹은 그릇된 견해를 버리고 성스러운 흐름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入流 또는 豫流라고 합니다. 또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逆流라고도 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물결에 휩싸여 떠내려가다 보면 결국엔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게 됩니다. 힘이 들더라도 흐름을 거슬러 밖으로 나와야만 괴로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세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도록 구명보트의 밧줄을 단단히 움켜쥐는 것입니다. 바로 戒를 지키는 일이지요. 하지만 밧줄을 잡고 매달려 있자면 버티기가 힘들어 자꾸만 손을 놓고 싶어집니다. 또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자니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것 같고 뒤떨어지는 것만 같아 조바심도 납니다. 그래도 끝까지 정신을 차려 밧줄을 움켜쥐고 세찬 물결을 거슬러 강가로 헤엄쳐 나와야 합니다. 물론 밧줄을 단단히 움켜쥐었다해도 강가에 이르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손을 놓을까 말까 하는 갈등이 수백 수천 번도 더 일어납니다. 그러나 밧줄을 단단히 쥔 사람은 적어도 더 이상 강물에 떠밀려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윤회의 사슬, 육도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확연히 알아차렸다는 뜻입니다. 어떤 것이 죽음의 길인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지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아차리는 正見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正見에 눈을 떴다고 해서 과거의 습기가 일시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자꾸만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 합니다. 하지만 預流에 든 사람이라면 잠시 어리석음에 휘둘려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서 바른 길로 되돌아옵니다. 화를 냇다가도 아집 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차리고, 욕심을 냇다가도 그것이 자기 욕심임을 알아차리고, 꿈을 꾸다가도 그것이 꿈인 줄 알아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