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應無所住 而生其心 에 대하여

金剛經에 나오는 말로서 집착을 버리고 머무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는 뜻입니다.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는 이치를 깨치지 못하면 금강경을 진심으로 이해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땅이 주하는 마음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우리는 뭐착한일을 하나 했다하면, 신문에 나고, 테레비에 나오고 그럽니다. 그것을 相에 住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이란 자아가 깊숙히 개입하여, 나라는 我相이 표층에 나와 있는것을 말함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햇드라도 ,언제 그렇게 햇느냐고 태연한 마음을 갖는것. 그런마음을 내어라하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중생은 말이 그렇치, 그게 그렇게 쉽나요. 상에 주하게 되지요. 열매가 덜익어서 그런것이겟지요. 그리하여 그런 마음을 내는것은 깨달음의 정점에서나 있을수 있는행위이겠지요. 마치 선의 시조인 혜능대사가 이 구절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듯이... '집착없이 마음을 내라고 했는데 내가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해서 그렇게 안 되니까 남을 돕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그저 주저앉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의 목적은 남을 돕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흔들림 없는 참자유 참행복을 누리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는 참뜻을 바르게 알았다면, 완전한 자유와 행복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뿐입니다. 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만일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상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고정된 생각과 집착, 심지어 법에 대한 집착, 경전에 대한 집착도 다 상입니다. 금강경이라는 모양과 형식에 매여서는 금강경의 본뜻을 알 수 없고 불법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모양에 집착하면 나도 모르게 다른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진실로 머무르는 바 없이 있는 그대로 응대할 수 있다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냄새 맡아지는 것과 맛보아지는 것,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까지 다 불법이고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處處가 佛像이고, 하는 일마다 佛供입니다. 이럴 때 진실로 佛法僧 三寶가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