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이성으로 신앙을 논할 수 있을까? ---------- 토마스 아퀴나스 – 신학대전

- 하느님은 진리 자체다.그러므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 계시와 자연 : 과학의 길을 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식의 종류를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신으로부터 오는 계시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지식이다. 삼위일체라든가 성육신, 원죄와 같은 기독교의 기본 교의는 계시의 신념이지 일바적인 지식이 아니다. 반면 자연신학에서는 인간의 경험과 이성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종교 경전이나 계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인식은 중세의 철학에 대단히 중요한 전환이 되었다. 지식 가운데 일부는 신앙에서 벗어나 독립적 지위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은 근대 유럽에 자연과학이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기독교에서 신은 전지, 전능, 참된 선이라는 세 가지 至高無上의 속성을 지닌다. 많은 사람들이 신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대상이며, 신의 존재는 증명이 필요없는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마스아퀴나스에게 신은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이성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얼핏 종교의 교의에 위배되는 불경한 발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이성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보자. 인간이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신의 존재’는 그야말로 틀림없이 확실한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첫 번째 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 개념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운동하는 물체는 필연적으로 다른 운동하는 물체에 의해 추동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동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으므로 반드시 ‘제1의 동자’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바로 그 제 1의 동자, 즉 최초의 추동자가 신이다. 두 번째 논증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서 시작된다. 4원인설에 따르면,어떤 사물도 그 자신이 동력인이 될 수는 없다. 즉 모든 사물의 운동은 다른 사물에 의해 추동된 것이며, 그 운동의 동력인은 반드시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물이다.이런 추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다보면, 필연적으로 최초의 동력인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최초의 동력인이 바로 신이다. 세 번째 논증은 우연성에 대해 논하며 시작된다. 세상에는 많은 사물이 필연적이 아닌 우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우연히 존재할 수는 없다. 만약 모든 사물이 그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느 시점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때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선가는 무언가 하나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 하나의 필연적 존재가 바로 신이다. 네 번째 논증은 만물의 성질에 따른 위계를 바탕으로 한다. 만물에는 우열과 높고 낮음의 구분이 있고, 어떤 성질이든 그것에 맞는 위계가 있다. 이러한 위계에 필연적으로 최고위가 존재하는데, 그 최고위는 다른 모든 하위 위계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완벽’과 ‘존재’의 최고위는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완벽과 존재의 원인이 된다. 이 최고위가 바로 신이다. 다섯 번째 논증은 目的因 논증이라고도 한다. 이 논증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다.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고 나무가 되는 것처럼 세상 만물에는 제각기 목적이 있다.세상 만물의 목적은 각각 다르지만 조화로운 질서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이런 조화로운 질서는 최고의 목적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최고의 목적이 바로 신이다. 이 논증은 ‘설계론 논증’이라고도 한다. 신은 대단히 지혜로운 설계사(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세상 만물, 생물의 존재 목적을 설계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조화로이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퀴니스의 이 다섯 가지 논증은 모두 반박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논증만 하더라도 뉴턴역학이 나타나면서 바로 부정되었다. 나머지 논증에 대한 반박은 독자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