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모나드론 -

양철나무꾼은 어떻게 자기만의 심장을 갖게 되는가? - 원자론에서 모나드론으로 - 라이프니츠는 17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린다. 라이프니츠와 뉴턴 가운데 누가 먼저 미적분을 발명했는가는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사물까지 보일 수 있게 하는 현미경”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사물’이 뭘까? 라이프니츠는 그것을 ‘모나드(Monad)’라고 불렀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원자론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데모크리토스와 피타고라스가 주장한 원자론은 세상이 충만과 공허로 나뉘어 있으며, 충만한 부분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이러한 원시적 물질 관념을 배척한다. 라이프니츠는 “복합실체는 모나드들의 집합이다. 모나드의 어원인 모나스(Monas)는 ‘하나’ 또는 ‘1이 되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단순실체, 생명, 영혼, 정신은 모두 단일체라고 말했다. 모나드는 연장이라는 속성을 갖지 않으며, 형상이 없고 부분이 없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후의 점으로, 조합하거나 분해될 수도 없다. 모나드는 실체로 이해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로 3차원적이지 않은 힘 혹은 에너지다. 모나드는 외부 힘의 작용에 의지하지 않으며, 모나드 자신의 힘이 곧 그의 활동의 원인이다. 라이프니츠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념을 빌어 이 힘을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 완전현실태)라고 표현했다. 엔텔레케이아는 자아의 발동자, 즉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에 있어 모나드는 욕구와 지각이 있으며, 제 각기 다르고 독립적이다. 모나드는 영혼이며, 형체 없는 자동기계다. 모나드의 생성과 소멸은 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어찌보면 모나드론은 物活論(모든 물질은 살아 있으며 정신이 있다고 믿는 철학의 관점)적 색체를 띤 세계를 창조했다고도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남긴 난제를 극복하고자 할 뿐 아니라, 모든 실재성을 신/자연이라는 단일 실체로 귀결시켜 자연 안의 여러 다른 요소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던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기도하다. 모나드론이 이런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모나드에는 질적 다양성이 있을 뿐 양적 다양성은 없기 때문이다. 모나드론에 따르면, 자연계에 서로 완전히 같은 두 개의 모나드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나들 사이의 차이는 서로에게 비추어진다. 후대의 물리학자들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에는 ‘물질의 가장 미세한 입자는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사상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 예정조화설 -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으로 데카르트의 일원론을 극복했지만, 모나드론 자체에 제기되는 의문도 존재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에 따르면, 모나드에는 다른 무엇도 끼어들 틈이 없으며 서로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이며 각각의 모나드는 모두 자신만의 활동 법칙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모나들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사실 모나드론의 설명은 사람들 사이에조차 사람과 미움, 복잡한은원관계가 존재할 만큼 세상 만물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는 우리의 소박한 세계 인식과 상반된다. 이에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들이 하느님을 통해 서로 공존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예정조화설’이라 한다.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자들은 하느님, 자연, 인간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프니츠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피노자는 하느님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라이프니츠는 하느님과 자연을 확연히 구분한다. 신은 라이프니츠 철학 체계의 출발점이자 주춧돌이다. 어느 한 모나드와 다른 모나드 사이의 작용은 하느님의 중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라이프니츠에게 하느님은 우주의 조화를 확정짓고 모든 모나드들에 대한 계획을 예비해놓은 우주의 설계자이자 입법자였다. 라이프니츠도 스피노자처럼 결정론자였기에 스피노자에게 제기되었던 것과 똑같은 문제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이프니츠에게 인간의 자유는 ‘임의 선택’이라는 의지적 결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전 방향에 순응하면서 방해 없이 자아를 실현하는 것, 자신에게 예정돼 있는 존재로 되는 능력이 곧 자유라고 보았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장차 무엇이 될지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다. 그 어느 정도의 의식이 곧 자유인 것이다. ‘예정조화설’은 다소 난해하고 심지어 황당무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컴퓨터 과학을 생각해보았을 때, 우주와 우주의 정신성은 그보다 높은 차원의 영혼을 닮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인간 자신의 영혼 또한 슈퍼컴퓨터가 창조한 ‘모나드’는 아닐까? -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 - 1676년, 라이프니츠는 헤이그에 살고 있던 스피노자를 찾아갔다. 이 때 두 사람이 토론한 핵심 주제는 신이었다. 스피노자는 자연신론자였고, 라이프니츠는 은밀한 카톨릭 신자였다. 라이프니츠는 마치 어벤져스 시리즈의 ‘닥처 스트레인지’에 나오는 모든 ‘가능한 세계’처럼 하느님도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무한한 가능성을 고려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제로 실현된 것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에서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할 때 가능한 세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창조했다‘라고 썼다. 그의 또 다른 저작인 <변신론>에서도 “하느님은 최고의 지혜, 무한한 선의 존재이므로 가장 좋은 것을 택하지 않았을 리 없다”라고 말한다.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악이 존재하는 걸까? 이에 대해, 가능한 많은 것들이 다양하게 용납될 때 선의 가능성도 최대가 된다는 것이 라이프니츠가 이해한 ’가장 좋은 세계‘다. 그러나 이 세상이 완벽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피조물이 하느님이 되게 할 만큼 피조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악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피조물 자신의 유한성 때문이다. 두리는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현존하는 세계에서의 악에 대한 선의 비율은 다른 어떤 가능한 세계에서보다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세계는 여러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이라는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이런 생각을 ’낙관주의‘라고 불렀다. 라이프니츠는 크게 두 가지 세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죄악이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자유의 세계, 다른 하나는 자유도 없고 죄악도 없는 세계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라이프니츠는 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죄악이 있지만 그래도 자유가 있는 세게이기 때문이다. 사실 악 자체는 그것에 대항할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선으로 향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