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지그문트 프로이트 –----------- 꿈의 해석

- 인간의 의식은 3층으로 이루어진 빕 - 프로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꿈과 초자연적 능력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꿈에서 보는 광경은 귀신의 농간이나 미래에 대한 조짐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꿈의 해석>의 속표지에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인 <아이네이스>의 시구가 써 있다. “천국을 움직일 수 없다면, 지옥을 움직이리라.” 그러나 프로이트가 이 시구를 인용한 이유는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 지옥과 무관하다. 그의 책에서 천국과 지옥은 사람의 의식구조와 의식의 억압을 가리킨다. 프로이트는 인류의 의식에는 억압이 존재하고, 억압하는 대상은 욕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욕망은 많이들 들어보았을 리비도(libido)다. 많은 사람이 리비도는 곧 성욕이라는 식으로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성욕이 리비도의 핵심이기는 하나 결코 전부는 아니다. 리비도의 발현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며, 특정 정도 내지 강도를 지니고 있다. 리비도는 물론 ‘생의 본능’에서 비롯된다. 이 본능은 단순히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나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애정, 연결, 나아가 번성하고자 하는 욕망까지 포함한다. 생의 충동에서 비롯된 리비도가 추동력이라면 왜 그것을 억압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리비도는 만족을 모른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과연 누가 시시각각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 수 있을까? 그렇기에 정상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 그 사람의 리비도는 항상 억압 상태에 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의식구조 이론을 설명하기 이해 놀라운 비유를 든다. 인간의 의식은 3층으로 이루어진 집과 같다는 것. 가장 높은 층에 거주하는 의식은 가장 안정적이고 질서를 추구하며 가장 고상한 일가족과 같다. 두 번째 층에 거주하는 전의식은 점잖게 자기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가족이다. 가장 아래층에 사는 무의식은 거칠고 난폭한 데다 충동적이며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럽게 구는,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식한 일가족이다. 그런데 1층과 2층을 오가는 계단에는 문지기가 있다. 문지기의 역할은 무의식으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의식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가로막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지기도 가끔은 피곤해서 경계를 소홀이 하는 때가 있다. 무의식은 이 틈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버린다. 때로는 변장을 하면서가지 문지기를 속이고 올라간다. 프로이트는 이 문지기가 바로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의식의 3층구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격 구조 또한 3층으로 제시한다. 성격을 이루는 각각의 층은 초자아, 자아, 이드(id)다. 이 가운데 전의식에 대응하는 자아(ego)는 아동기에 형성되며, 사고 활동을 담당한다. 인간은 자아의 규범을 통해 비로소 현실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것은 이드. 리비도가 바로 이 이드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장 터무니 없고 황당무계하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초자아superego는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와 같은 것으로 사회규범, 윤리 도덕, 가치관 등을 대표한다. 프로이트는 이런 비유를 들어 말한다. “자아와 이드의 관계는 기수와 말의 관계와 비슷하다. 말은 움직이는 힘을 제공하고, 기수는 목표를 정하는 동시에 그 동물의 방향과 움직임을 제어한다. 그러나 자아는 때때로 이드라는 말이 달려나가는 방향을 통제하지 못해 속수무책이 되기도 한다.” - 꿈은 소망의 충족이다 -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 에서 이렇게 말한다. “꿈은 그저 아무렇게나 꾸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지 않으며 황당무계하지도 않다. 자는 듯 마는 듯 혼몽한 상태의 산물도 아니다. 꿈은 의미 있는 정신 현상이다. 꿈은 소원의 성취이며, 깨어 있을 대의 정신 활동의 연속이다. 꿈은 고도로 복잡하게 뒤섞인 지적 활동의 산물이다.” 오랫동안 억압돼 있던 무의식은 문지기를 속일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꿈속에서 제멋대로 내달려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억제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 억압된 충동과 자아의 감시 및 방해 사이에서의 일종의 타협으로서의 꿈”이다. 프로이트는 말한다. “꿈의 형성 동인은 종종 소망을 충족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소망의 충족이라는 황당무계한 이유가 꿈의 형성 동인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꿈의 형성과정이 정신의 검열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꿈은 소망의 충족’이라는 원칙이다. - 욕망이 충족되지 못해 문명이 생겨났다 -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프로이트는 당시 사람들을 놀라 나자빠지게 만든 결론을 도출한다. 아동에게도 성의식이 존재한다는 것.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성욕은 영유아기부터 시작되지만 아동의 의식과 무의식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하는, 대단히 중요한 가설을 제시한다. 아동은 자라면서 부모의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 여러 심리성적 발전단계로 진입한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다. 이 가운데 남근기에는 아동의 성본능이 무목적(구체적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의 사물을 향해 안정적으로 발달하는데, 이 단계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나타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왕 신화를 그 원형으로 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 단계의 남아는 자기 어머니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 아버지에게는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데, 자신이 아버지를 죽여 어머니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강한 두려움 – 거세 불안-을 느낀 나머지 어머니에 대한 성욕을 억압하고 아버지를 선망하며 동일시 하는데, 이것이 초자아의 일부가 된다. 프로이트의 이론 가운데에는 인류 문명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도 있다. 프로이트는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승화돼 문학이나 예술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영유아기의 성욕을 본능이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해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음악, 조각, 회화와 같은 고상한 예술도 프로이트가 보기에는 그 기본 동력이 리비도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프로이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진정한 천재 예술가들은 색과 형상, 음악을 통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해내지 않던가. 프로이트는 마지막 저작인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에서는 종교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인류의 무력감에서 종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기에 자연히 아버지의 형상으로부터 보호와 도움을 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심층적 심리적 요구 때문에 인류는 신이라고 하는 종교적 형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