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토마스 쿤 -----------– 과학혁명의 구조
- 과학에도 혁명이 일어난다 -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귀납주의와 반증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는 과학이 인류의 역사에서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계단식 혁명’을 겪어왔다고 말한다. 과학사의 어느 시점마다 어느 한 가지 이론적 틀이 다른 이론적 틀로 철저히 대체돼왔다는 것이다. 쿤은 과학이 ‘ 전 과학 – 정상과학 –위기 –혁명 – 새로운 정상과학’의 단계를 거치며 발전한 뒤 또다시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왕조 교체처럼.
쿤은 또 ‘과학 공동체’에는 모두에게 공통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과학 공동체가 공통으로 준수하는 규범과 신념을 그는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패러다임 안에서 공통된 가설을 내놓고 공통의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과학을 ‘정상과학’이라고 한다. 연구에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다라 과학은 전과학과 구분된다. 즉 패러다임의 확립은 어느 한 과학 영역의 발전,성숙의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뉴턴의 역학, 맥스웰의 전자기학 등이 바로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반면 샤머니즘이나 점성학 같은 비과학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없다. 쿤은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배척함과 동시에 과학자일 수 없다”라며 패러다임이 없이는 과학도 없다고 믿었다. 일단 패러다임이 확립되고 나면, 학과를 개설하고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고 연구비를 받고 강의를 개설하고 학회를 만드는 등 그 분야의 연구 활동이 ‘말이 질주하듯’ 활발해진다. 이 시기에는 모두의 인식이 일치하기 때문에 과학의 기본 개념과 규범에 대해 굳이 논쟁할 필요가 없다.
쿤은 과학사를 정상과학과 단계와 혁명 단계로 구분한다. 어느 한 영역에서 모든 사람이 특정 형이상학과 연구 방법이 의심의 여지없이 적합하다고 여기고 있을 때, 이 시기의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가 바로 정상과학이다. 그들은 기존의 확립된 패러다임에 따라 연구를 지속하기만 하면 된다. 마치 뉴턴의 역학 체계가 확립되자, 뒤이어 다니엘 베르누이와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유체역학을 확립하고 조제프 루이라그랑주가 분석역학을 발전시킨 것처럼 말이다. 정상과학 단계에서는 “자연계 전체를 패러다임이라는 상자 안에 집어넣기라도 한 듯”순조롭게 발전한다.
그런데 혁명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하나둘 도전자가 생겨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혁명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 것은 성숙기에 다다른 과학이 통상적으로 겪는 과정이다.” 앞에서 언급한 수성의 근일점 이동에 관한 연구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패러다임이 뉴턴역학의 패러다임을 격퇴시킨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쿤은 오래된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전통적 이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정상과학 단계에서 발생하는 혁명은 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 ‘과학혁명’은 변칙에서 시작된다 -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난제가 출현하게 된다. 쿤은 이것을 ‘변칙anomaly’이라고 부른다. 변칙이 출현했다는 것만으로 기존 패러다임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는 일단 발생하면 다음의 세 가지 결과로 이어진다. 첫 번째 결과는 정상과학이 결국 위기를 해결하고 기존의 정상과학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결과는 문제가 끝내 해결되지 않아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언젠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세 번째 결과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기존의 패러다임이 병존한 채 경쟁하다가 ‘패러다임 전쟁’에 진입하는 것이다.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플로지스톤’설로 연소의 원리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훗날 라부아지에가 산소와의 결합으로 연소의 원리를 설명했다. 이렇게 라브지에가 새로운 방식으로 연소의 원리를 설명할 때도 기존 ‘플로지스톤’설의 도움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뉴턴역학이 나타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접촉을 통해서만 힘의 작용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물체와 물체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상호 간에 인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즉 과학혁명은 ‘패러다임이 전환paradigm shift’되면서 실현되는 것이다. 쿤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이라고도 부른다.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은 점진적으로 출현하지 않고 “어느 순간 갑자기, 때로는 한밤중에,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머릿속에 ” 불쑥 나타난다고 말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너무나 얼토당토않게 보이기 때문에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던 과학자들은 ‘정통’의 이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항거한다. 용기와 담력,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 정신이 부족한 사람들도 기존의 틀을 감히 부수지 못한다. 쿤을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쿤은 ‘과학이 직선적으로 발전하며 지속적으로 축적된다’는 기존 관점에 철저히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쿤이 보기에 과학의 발전은 불연속적이며 통약불가능하고 통일적이지도 않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의 유형을 몰두형, 표현형, 꿀벌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몰두형 과학자는 과학을 자신의 신앙으로 삼아 열광적으로 몰두하며 헌신을 다한다. 표현형 과학자는 마치 스포츠 대회에 참가한 운동선수처럼 자신의 총기와 재능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 연구를 한다. 이들에게 과학 연구는 고급 두뇌 게임 같은 것이다. 반면 꿀벌형 과학자에게는 과학 연구가 일종의 직업이자 생계 수단이다. 그들은 그저 일을 하듯 열심히 성실히 과학 연구를 한다. 쿤의 이론에 따르면, 정상과학 단계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꿀벌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혁명 단계에서는 몰두형과 표현형 과학자들이 더욱 화려한 빛을 내뿜는다.
당신이 쿤의 관점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패러다임 전환 등 쿤의 많은 용어와 개념은 이미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실 과학의 역사에서도 진정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나아가 격동시키는 순간은 과학자들이 ‘아, 생각났어!’라고 외치는 바로 그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