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찰스 다윈 –---------- 종의 기원
- ‘진화’라는 개념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답하고자 한 핵심은 어느 한 생물 종이 어떻게 해서 또 다른 종 혹은 다른 여러 종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에서 소개된 “생존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 적자생존”, “우승열패”는 이제 누구나 아는 진화론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어디까지나 작은 범위의 환경에서의 부분적 적응이자, 수백만 년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미세한 변화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다윈은 같은 종 안에서의 개체들이 아무리 서로 비슷하더라도 모든 개체는 제각기 독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똑같이 두 눈, 두 귀, 양손, 두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키와 체중, 피부색은 제각각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유전과 관련이 있다. 유전의 두 가지 기본 요소는 재조직과 변이다. 재조직과 변이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자연선택’의 전제 조건이다. 다윈은 모든 생물 개체는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포식자의 존재부터 먹이 상황, 서식 환경, 심지어 기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모든 생물 개체는 이런 수많은 환경 요소의 시련을 받는 가운데, 우연히 이루어지는 유전자 재조직 혹은 변이를 통해 그 개체만의 독특하고도 유일한 특징을 갖게 되고, 여러 환경 요소들로부터 좋은 혹은 나쁜 영향도 받게 된다. 이 가운데 환경 적응 및 생존에 불리한 특징을 가진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유리한 특징을 가진 개체가 자신의 유전자를 전승하며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는 환경에서는 털이 수북한 생물일수록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선택은 본질적으로 자연도태를 의미한다.
- 신에 의한 창조는 필요없다 -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창조론 외에는 생물 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설명하는 학설이 딱히 없었다. <성경>의 구약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이 셋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각종 동식물을 창조하셨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창조’와 관련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중요한 표현이 있다. ‘그 종류대로’. 즉 신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 종을 하나하나 창조한 뒤 그대로 변치 않고 쭉 이어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어떤 신학자는 신이 약 6천여 년 전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론은 지금도 수많은 화석과 박물학적 증거에 의해 의문을 제기받고 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의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갈라파고스의 동식물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동식물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갈라파고스 군도의 환경은 아메리카 대륙의 환경과 많이 달랐다. 창조론을 따르자면, 창조주는 각각의 생물종을 그것이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에 두었어야 마땅하다. 다윈은 자신의 노트에 ‘처음에는 똑같은 생물 종이었다가 나중에 가서 변이가 발생한 것일까’라고 썻다. 다윈의 항해일지에는 그가 점차 종교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아무런 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두 창조주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대상을 창조하다니!” 하며 감탄할지도 모르겠다.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목표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안에서도 자주 창조론을 변호할 정도로 그의 사상적 전환은 사실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결국 진화론은 창조론이 생물계에 구축해놓은 기반을 근본적으로 깨부수기에 이른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과 그 생물들의 기관이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 난 것이라면, 그 어떤 지적 설계자나 창조자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 스스로의 과정은 자연의 성과를 설명해줄 뿐 다른 어떤 외부의 의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들 자신, 하나하나의 개체는 35억 년에 걸친 생물 진화의 결과이며, 모든 생물 종은 거대한 생명나무의 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다. 그러므로 혹여 당신의 조상이 당신에게 억만금의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해도, 당신은 최소한 35억 년에 이르는 진화에 있어서만은 승자다.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스펜서와 사회적 다윈주의 -
<종의 기원>은 출간 직후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다. 다윈의 친구였던 헉슬리만이 전심전력으로 진화론을 변호했을 뿐이다. 그 당시 박물학 교수였던 헉슬리는 다윈의 진심 어린 동행이었다. 사실 헉슬리도 다윈과 비슷하게 군함에서 박물학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헉슬리는 <종의 기원>을 다 읽고 나서 ”다윈의 사상은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빛을 가져다주었다“라고 말했다. 1860년 6월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국 학술협회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윌버포스 주교가 헉슬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그것은 할아버지 쪽 조상입니까, 할머니 쪽 조상입니까?“ 그러자 헉슬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에 수치스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할동 영역에서 별다른 성과도 없으면서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인 과학의 영역에 끼어들어 함부로 떠들어대는 그 경솔함만은 수치스럽기 그지없군요.“ 이 때문에 헉슬리는 ’다윈의 투견‘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헉슬리는 다윈보다 더 다윈 이론의 대변자였다. 그렇게 진화론은 십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학술계에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정작 다윈 본인은 진화론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지만,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진화론 사상을 다른 영역에 까지 확장하고 적용시켰다. 소위 ’사회적 다윈주의‘는 바로 이렇게 진화론을 사회의 여러 영역에 두루 적용한 산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사회적 다윈주의가 <종의 기원>보다 앞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스펜서는 다윈보다 일찍, 1855년에 출간한 <심리학 원리>에서 ’적자생존‘과 비슷한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스펜서는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관계를 생물 개체와 세포의 관계로 비유했다. 그는 심지어 자연계의 물리적 규칙까지도 인간사에 직접적으로 적용시켰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자연계의 ’먹이사슬‘ 논리에 근거한 ’약육강식‘, 자연선택, 적자생존’의 관점으로 사회적 현상들을 해석하는 사회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사회적 다윈주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 안에서의 생존경쟁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민족에 따라 우열을 나누는 인종주의가 성행했다. 이에 사회적 다윈주의도 정치 집단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특정 민족이 다른 민족을 통치하는 것이 덩당하다고 외치는 식민주의에 적극 활용되었다. 나중에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기초 위에 다양한 ‘우생학’이론도 출현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이 이론은 나치 독일이 선천적 장애인과 정신 질환자를 ‘비자발적으로 안락사’시키는 데까지 활용되었다. 이른바 T4 법안이다. 1930년대에는 미국의 각 주에도 이와 비슷한 법령을 제정해, 정신 질환자를 상대로 강제 불임시술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야만은 과학이론으로서의 진화론과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혼동된 결과였다.
자연생태계에서의 약육강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 사회에서의 ‘약육강식’은 일종의 당위의 주장으로 변질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사회의 당위적 주장이 마구 뒤섞인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이렇듯 우리는 과학 이론이 반인륜적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현대의 분자인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기원은 모두 아프리카라고 한다. 즉 모든 인간은 공통의 조상을 가지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지극히 미미하다는 것. 사람의 생물학적 특징만으로 특정 인종, 민족의 우열 여부, 약육강식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다. 무엇보다 다윈은 생물학적 결정론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