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존 로크 ----------- 시민정부론

- 로크, <시민정부론>과 명예혁명 -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라고 한 < 두 도시 이야기>의 서두처럼, 존 로크가 살았던 시대도 고상한 이성의 시대이자 광기의 변동으로 출렁이는 시대였다. 로크는 영국의 국왕 찰스 2세 암살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네덜란드로 망명, 그곳에서 1683~1689년까지 약 6년간 생활했다. 그제야 비로소 세상일에서 벗어나 여유로워진 로크는 그곳에서 자신만의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정치철학의 고전 <시민정부론>이다. <시민정부론>이 출간된 1689년은 마침 영국의 명예혁명이 종결된 해이기도 했다. 로크는 이책의 서문에서 명예혁명을 법리적, 철학적으로 변호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명예혁명은 서양 근대사에서 대단히 비범한 위상과 의의를 지니고 있다. 1642년에 영국의 국왕 찰스 1세가 1차 내전을 일으킨 후 영국은 국왕과 자산계급 사이의 반복되는 투쟁에 빠져들었다. 당시 영국의 의회는 자산계급과 신흥귀족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왕에 반대하는 ‘휘그당’, 대지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왕을 옹호하는 ‘토리당’으로 양분돼 있었다. 휘그당에서는 국왕의 권력 제한을 요구했고, 토리당은 강력한 군주제를 지지했다. 그런데 1685년, 제임스 2세가 즉위한 뒤 국민에 대한 노역과 박해가 심해지자 국민 사이에서 대대적인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놀란 휘그당과 토리당은 합심해 1688년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들은 제임스 2세의 사위 윌리엄을 네덜란드에서 데려와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명에혁명’이다. 1689년, 영국 의회에서는 ‘古來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인 <권리장전>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서는 군주가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않고서는 어떠한 법률의 효력도 정지시킬 수 없고, 세금을 징수하거나 상비군을 신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민은 의회의 의원을 선출할 자유를 가지며, 의회는 변론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도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확립한 뒤로 영국만의 독특한 의회민주제가 발전하게 되었다. - 홉스에 반대하다 :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 - 로크는 <시민정부론>에서 왕권신수설뿐만 아니라 홉스의 국가론에도 반대했다.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와 질서를 누리기 위해 자신의 권리 일부를 절대 군주, 즉 리바이어던에게 양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양도는 사실 무자비한 것이다. 리바이어던이 엄존하는 상태에서 국민은 그의 절대권력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크는 국가 혹은 국왕도 계약에 참여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는 일방적으로 백성이 받들어 모시는 존재가 아니다. 국가도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다. 로크는 국가 혹은 정부는 “국민의 평화, 안전, 공공의 복리를 위해” 존재하며, “정치권력은 재산을 규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로크의 이론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어쩌다 ‘생명, 자유, 건강, 재산’등을 포함한 기본 권리를 누린다. 그런데 인간은 어쩌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나? 자연 상태에서는 법률의 부재 등의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위 자연법이란, 강제력이 없는 일종의 습속에 지나지 않는다. 로크는 일단 모든 사람에게 자연법을 위반한 사람을 처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 상태서는 사람 간의 분쟁을 판결하고 처리할, 나아가 자연법을 집행할 공인된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침범과 위협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인류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결성하고, 자기 자신을 정치하에 두기로”했다. “최고 권력이라 해도 당사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다른 누구의 재산도 함부로 취할 수 없다.” 즉 국가는 사유 재산을 함부로 가져갈 수 없다. 만약 가져간다면 개인의 자연권을 침범한 것이다. 만약 정부가 개인의 재산을 침범한다면 최초의 계약을 위배한 것이므로 국민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같이 그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로크는 모든 개인이 권리 보장과 자유를 뉠 수 있도록 정부는 안정과 안녕을 책임지는 보안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보안은커녕 국민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그런 이유로 로크가 심혈을 기울여 고민한 문제도 정부의 권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였다. 국가가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에 못지않게 강한 힘으로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로크이 생각이었다. “폭력은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폭력에 반대하기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 국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국가가 개인을 이해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권력은 사유할 수 없고, 재산은 공유될 수 없다 - 로크는 입빕기관은 좋은 것, 행정기관은 나쁜 것이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는 물론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국의 역사에서 의회는 입법기관을, 국왕은 행정기관을 대표했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법률의 제정권과 집행권을 무두 갖게 되면 그들 인성의 악에 절대적 유혹이 돼, 권력을 빼앗아 움켜쥐려고 할 뿐 그들 자신은 그들이 제정한 법률에 복종하거나 구속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법률을 제정하거나 집행할 때도 그들 자신의 사익에 부합하도록 할 것이다.” 로크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과 달리, 사법권을 단독으로 분리시키지 않고 행정과 입법이라는 이권만 분립시켰다. 로크의 시대에 영국의 대법관은 국왕에 의해 수시로 면직당했다. 그러다가 명예혁명 이후 사밥권 독립이 실현되었고, 영국의 국왕은 그야말로 왕이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국가와 재산에 대한 로크의 관점은 다음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권력은 사유할 수 없고, 재산은 공유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재난의 문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념을 제시한는 것과 이념을 실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을까. 로크의 정치 이념은 최종적으로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실현되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 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정당한 동의에서 나온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다.” 그래서 후대의 몇몇 사람들은 미국의 건국 과정이야말로 로크의 정치철학을 실험하는 거대한 장이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