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존 스튜어트 밀 ----------- 공리주의
- 삶의 모든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벤담과 오랜 친구였다. 두 사람은 1808년에 만나 교유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오랫동안 벤담은 밀의 가정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 시대의 다른 학자들과 달리 아무런 정규교육도 받지 않았다. 초등,중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들어가지 않았고, 아버지와 벤담에게서 개인 교습을 받으며 자랐다. 한마디로 밀은 私塾 교육 실험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제임스 밀은 아들을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재로 키워내고 싶었다. 아들 밀은 이런 아버지의 배려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밀은 어릴 때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 기하학, 대수 등을 배웠고, 열두 살에는 논리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열세 살에는 에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의 경제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14~15세에는 화학, 식물학,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밀은 자신의 재능이 특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때문에 어느새 학식이 동년배를 크게 뛰어넘게 되었다. 밀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한시라도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정신을 잃을’정도였다고 한다. 밀에게는 이러한 사숙 교육이 학교 교육보다 더 자유로웠을까, 부자유스러웠을까.
그러던 1826년 가을, 밀은 병목기에 빠져들어 – 아마도 특수한 가정교육의 부작용이었을-심각한 신경쇠약 증세를 겪게 된다. 어느날 그는 멍한 상태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삶의 모든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그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자신이 이제껏 받아온 교육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다. 바로 감성이었다. 그는 고금의 모든 지식을 열심히 흡수하고 있었지만, 그저 그렇게 지식을 흡수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훗날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쾌락이 아닌 다른 목적에 몰두할 때에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 그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쾌락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쾌락 이외의 목적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결국 밀은 윌리엄 워즈워스, 콜리지 등의 시를 읽으며 심리적, 정신적 위기에서 차츰 벗어나게 된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밀의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벤담의 철학체계에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밀은 벤담의 쾌락 원칙을 완전히 내던져버리지는 않았지만, 쾌락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다시금 진지한 의문을 품고 사고하기 시작했다.
-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될지언정 배부른 돼지가 되지 않겠다 -
밀의 <공리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판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공리주의>는 1861년에 <프레이저스 매거진>에 최초로 발표되었고, 186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때 밀의 나이는 예순이었다. 공리주의만큼 사법, 정치ㅣ,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 사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는 공리주의 자체의 우수한 면과 관련이 있다.
홉스의 사회계약설과 비교해볼 때 공리주의의 장점은 훨씬 두드러진다.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자연 상태’를 가정하는데, 여기에 자연 상태는 일종의 사고실험일 뿐이기 때문에 경험적 기초가 부족하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익을 좇고 손해는 피하려고 하는 인간 본성에도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쾌락을 누리려 하고, 고통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공리주의는 자명한 경험적 원리 위에 세워진 사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밀의 책에서도 공리주의의 이런 특징이 뚜렷이 들어난다. 밀은 공리주의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공리 원칙이 사람들에게 벌리 받아들여진 이유에 대해서도 말한다. 밀은 인성에 상응하는 기초가 없으면 대다수 사람들이 도덕 규칙을 따르기 어렵고, 따르지도 못할 도덕 규칙은 유명무실해져서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에 상응하는 기초가 바로 이익을 좇고 손해와 고통은 피하려고 하는 천성을 가리킨다. 공리주의는 기본적인 인간 본성에 순응하기 때문에 널리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어, 밀은 공리주의의 도덕 기준과‘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원칙에 대해서도 논증한다. 벤담에게 있어 모든 종류의 행복은 등가였다. 그래서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한 ‘쾌락 계산법’을 설계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쾌락을 느끼면 그 사람의 쾌락값은 +1이고, 어떤 사람이 고통을 느끼면 그 사람의 쾌락값은 –1이다. 이렇게 하면 간단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값을 산출할 수 있다. 그래서 벤담은 “압정 놀이도 詩와 같이 훌륭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말은 행복의 총량이 행복의 질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밀은 행복을 양으로만 계산하는 벤담의 사고방식에 반대했다. 밀에게 행복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의 ‘질’이었다. 행복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 밀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특정 쾌락이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욱 바람직하고 가치 있다. 이것이 공리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분했다. 저급 쾌락의 수량이 아무리 많다 해도 단지 수량의 많음 때문에 고급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밀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만족한 돼지가 되는 것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한 바보가 되는 것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라고 한 것이다. 당신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1시간 동안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과 1시간 동안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행복한가?
밀의 공리주의에는 엘리트주의적 면모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밀은 또 “개화되지 않은 사람은 교화된 가치를 감별할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밀에게 있어 행복이란 단순히 생리적 충족만이 아닌 존엄감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좋은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면 고등한 행복도 누릴 수 없다. 밀은 행복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벤담에게 행복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뭔가가 행복이라면 그게 곧 행복이었다. 나에게 ‘치맥’이 만족을 준다면, ‘치맥’이 곧 행복인 것이다. 그러나 밀은 누구에게도 ‘치우쳐 있지 않은 ’방관자를 끌어들여, 그 방관자의 눈으로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를 규정함으로써 공리주의에서 이기주의를 분리시켰다. 이렇게 밀은 사실상 우리가 다양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고급 쾌락을 포기하고 타락할 수도 있으며,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손쉬운 쾌락을 추구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밀은 공리주의와 정의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한다. 사실 <공리주의>라는 책 자체가 밀의 지대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밀은 그중에서도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공리주의>를 통해 벤담에서 밀에 이르는 계승과 비판적 발전을 엿볼 수 있다.
- 최대 다수‘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
밀은 벤담식 공리주의에 대해 비판과 수정을 가하지만, 두 철학자가 공유하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은 자동으로 희생된다. 그리스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아가멤논 왕이 트로이 침공을 위해 떠나려 하는데,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아 출항할 수가 없었다. 이에 점성가 칼카스는 아가멤논이 가장 사랑하는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칼카스의 말을 듣고 고심하던 아가멤논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한다. 벤담의 공리주의 원칙에 따르자면, 이런 선택은 분명 사회 전체의 효용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피게네이아의 생명은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전체의 이익‘이라는 말은 이렇듯 종종 개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구실로 악용된다. 아니,어쩌면 공리주의는 개인의 신성불가침한 권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런 논리가 횡행하게 되면,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상황은 상당히 빈번해질 것이다. 때로 그렇게 희생되는 것은 소수의 ’목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공리주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난제다.
둘째, 벤담은 행복의 평균값을 과소평가한다. 그런데 만약 세계의 인구가 단기간 내에 폭증하면 인류 전체의 복지도 그만큼 늘어나게 될까?인구가 폭증하면 1인당 점유 자원은 감소하기 마련이고, 평균적인 복지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벤담은 행복을 공동체를 위한 행복으로 전한시켰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세히 논하지는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의 복리 증진은 다방면의 고려가 필요한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열 명인 가정이 있다고 치자. 가족 구성원이 매일 빵 한 개씩은 먹어야 한다. 하루는 부모님이 빵을 15개 사 왔다. 평소보다 5개 더 많이 사 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가정의 부모는 모든 음식을 자녀들에게 ’고르게‘ 나누어주지 않았다. 첫째에게만 3개를 주고, 나머지 자녀들에게는 한 개씩만 주었다. 이 가정의 행복의 총량은 분명 늘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빵을 주는 건 누가 봐도 불공평하다. 그런데 공리주의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행복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분배 정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셋째, 벤담과 밀은 행복에 관한 복잡한 심리를 제대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행복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소박하게만 보인다. 만일 어느 한 사람 혹은 한 집단의 행복이 다른 집단의 고통에 기반한다 해도, 그 또한 어쨌거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헝거게임>에서 묘사한 극단적 장면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과연 행복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 것일까?
이렇듯 공리주의는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적지 않은 난제도 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경우, 공리주의에만 단독으로 의지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한 비극적 딜레마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