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장 자크 루소 –----------- 사회계약론

- 불평등은 자연 상태가 아닌, 사회에서 기원한다 - 18세기의 유럽은 대전환의 시대였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는 제3신분(도시민, 농민등 평민 계층, 제 1신분: 성직자, 제 2신분 : 귀족)이 부상하고 있었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적 권리는 얻지 못하고 있었고, 귀족들은 구체제 속에서 평민들을 쥐어짜고만 있었다. 이 시기의 루소는 방랑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상적으로는 누구보다 강고한 전사였다. 장 자크 루소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혁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사상에서 뿜어져 나온 불씨는 프랑스 대혁명에 불을 지폈고, 이 맹렬한 불빛은 다시금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루소는 논문<학문 예술론>에서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도덕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다.학문과 예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도덕성은 타락한다고 한 그의 논증은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백과전서파의 관점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인성과 이성에 대해 낙관적이었던 백과전서파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1753년 루소는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 불평등의 원인을 파헤친다. 홉스와 로크가 말한 ‘자연 상태’에 대해 루소는 이전까지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그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타인과의 투쟁 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동정심과 측은지심이 있기에, 다른 누군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먼저 나서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거나 함부로 죽이려 하지도 않는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유롭고 자족적이며, 어떤 형태의 불평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생겨나면서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의 순박함을 잃고, 사회 곳곳에 불평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작하고 노역하며 괴로움에 시달리게 된’ 반면, 권력을 가진 소수는 가만히 앉아 그 결실을 누리면서 살게 된 것이다. 사치와 부패로 시회 기풍은 무너졌고, 인성도 점차 타락해졌다. 사유재산이야말로 인간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인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핵심 관점은 훗날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사회계약론> - <사회계약론>1권 1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믿는자도 사실은 그들보다 더한 노예로 산다. 어째서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하는가? 루소는<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한’존재이기에 자신과 같은 인간이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타고난 권위가 없다고 말한다. 누구도 다른 누구의 노예일 수 없으며, 누구도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생겨나 인간의 타고난 선량함을 침식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이기적으로 변했고, 자기 수중의 권세를 이용해 타인을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연인과 사회인 가운데, 루소는 자연인에게 좀 더 기울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상태는 이미 소멸했다.루소는 인간이 어떻게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 넘어가게 되었는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결국 끊임없는 갈등과 다툼을 겪으며 멸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생존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루소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부분적 권리가 아닌 – 모든 권리를 남김없이 공동체에 양도하고, 자신의 인신과 모든 권력을 ‘일반의지’아래 두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일반의지는 公意, 즉 공공 의지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단순 다수의 衆意나 總意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일반의지는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지만 중의는 단지 사적 인간들의 의지의 총합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의의 ‘衆’이 아무리 인구의 대다수를 의미한다고 해도,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일 뿐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들의 공평한 납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개인이 사적 이익에만 골몰하면 세금을 회피할 방법을 찾으려고 궁리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이런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국가는 세수가 없게 돼, 국방, 공공 안전, 의료보장 같은 사회복지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 손해는 모두가 입게 된다. 그러므로 일반의지는 개인의 납세를 요구하고, 중의는 납세를 회피하려고 한다. 둘의 요구는 이토록 상반된다. 만약 사법적 판단이 공공의 이익이나 정의를 원칙으로 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법률은 일반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잇다. 동시에, 그 일반의지 또한 개인의 이성적 선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일반의지는 어느정도 개인 자신의 의지이기도 하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의지에 복종할 때는 누구의 압제도 받지 않는 자유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루소는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 자신이 곧 정부와 법률의 기원이며,우리의 의지가 곧 국가의 법률이 된다는 관점이다. 국가가 국민의 뜻에 따를 때 그 국가는 합법성을 지닌다. 국가가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국민은 정부를 폐할 권리가 있다. 둘째,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자유는 모든 사람이 국가의 법률에 따르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법률은 루소가 보았을 때 외부에서 강제되는 속박이 아니었다.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 어떻게 입법할 것인가는 모든 계몽운동이 다루어온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이때의 일반의지는 국민 전체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확립한 원칙에 해당한다. 루소는 “인간 스스로 제정한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곧 자유”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율을 실현할 때 사회상태에서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관점은 훗날 칸트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의지의 또 다른 측면인 강제성도 무시할 수 없다. 루소는 “일반의지를 따르지 않으려는 자가 있다면, 사회 전체가 그에게 일반의지를 따르도록 강제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일반의지는 마치 주권자에게 부여된 절대 권력처럼 보인다.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자코뱅당(급진적 사회혁명을 추진한 정치 분파)의 당원들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오는 이 문구를 정치적 지도 이념으로 삼았고, 자코뱅당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오 이 문구에 직접적으로 고무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의 시기’에 혁명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단두대에 올렸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자신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한쪽에는 민주자유가, 다른 쪽에는 공포정치가 나란히 놓여 있는, 루소 사상의 모순을 목도하게 된다. - 주권재민 : 정부는 해산될 수 있는가 - 19세기 영국의 사학자였던 토머스 칼라일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루소라고 하는 사람이 관념 이외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책을 하나 썼다. 그 책의 2판은 초판을 비웃었던 사람들의 가죽으로 제본돼 있다. ” 그런데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혁명성을 갖게 되었을까? 국가 주권이 아무리 사람들 사이의 계약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홉스나 로크의 주장대로 각자의 주권을 국왕 한 사람에게 양도하면 인민은 사실상 진정으로 주권을 갖지못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루소의 ‘일반의지’는 인민 전체에 속한 것이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넘길 수 없다. 이것이 ‘인민주권설’의 기본사상이다. 그렇다면 주권재민은 어떻게 체현되는가? 루소는 ‘입법’만이 그 방법이 된다고 생각했다. 법률로 주권의 소유를 보호해야 할 뿐 아니라, 인민도 주권이 찬탈당하지 않도록 항시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주권을 찬탈할 수 있는 주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염려한 참주가 아니라 정부다. 인민은 주권은 찬탈당하지 않으려면 따로 불러 모으지 않아도 정기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집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정부의 유지 여부와 현 정부 관료의 유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인민의 투표권이다. 이 말은 곧 정부는 언제든지 교체 혹은 해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인민은 주권을 잃기 쉽다. 주권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유를 잃는다는 말과 같다. 루소는 국가 내부에 파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정치 단체의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단체의 모든 구성원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루소는 모든 형태의 대의제 정부를 반대하고, 인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형태의 직접 민주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루소의 이런 구상은 실현된 적이 없다. 현대의 국가들은 대부분 간접적으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홉스와 로크로 대표되는 영국 철학자와 루소로 대표되는 프랑스 철학자의 근본적 사상 차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서로 다른 정치적 운명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입헌군주제의 길로 들어섰고, 프랑스는 혁명과 공화의 길로 나아갔다. 루소의 주권재민 사상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고, 미 대륙으로 뻗어나가 미국 독립 전쟁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