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한나 아렌트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악의 근원이 된다 - 1964년 10월 28일, 아렌트는 귄터 가우스가 진행하는 인터뷰 방송에 출연한다. 이 방송에서 그녀는 아우슈비츠에 대해 언급한다.그녀와 남편은 아우슈비츠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살의 소식에 전율하고 고통을 느낀 동시에, 그토록 비이성적인 행위가 군사적으로 무슨 필요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치철학자였던 아렌트는 그전까지 세상 모든 일에는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일말의 여지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우슈비츠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아우슈비츠는 도구적 이성의 극단이자 정밀한 계산, 극도의 효율, 도덕감을 완전히 상실한 살인의 컨베이어 벨트일 뿐이었다. 사람은 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물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사물처럼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모든 개성의 흔적이 제거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말소될 뿐이었다. 아렌트는 아우슈비츠에 숨어 있는 광기의 논리를 보았다. 그것은 거대하게 ‘갈라진 심연’과도 같았다. 그녀에게는 영원히 풀어낼 수 없는 마음의 응어리이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매우 세밀하게 파고들며 관찰한다. 극악한 죄를 지은 아이히만은 겉보기에 조금도 흉악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 기간 도중 감기에 걸려 방탄유리 안에서 자주 기침을 하기도 했는데, 그 모습은 시지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히만의 일생은 평범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특별한 재능이나 남다른 품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피 공포증 때문에 의사가 되려던 꿈을 포기한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그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 나보다 더 정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그런데 이렇게 피에 굶주린 것도 아니고 광기에 차 있지도 않은 사람이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것이다. 아렌트는 대량의 수사 기록을 읽고 또 읽으면서, 아이히만은 ’우리 시대 최대의 범죄자‘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히틀러식‘의 악마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히만은 그저 ’악의 평범성‘이라는 ’증상‘을 보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이러한 증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다. ”그가 법정에서 그리고 그에 앞선 취조 과정 중 보였던 행동의 특징은 순전히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사고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의 악은 본성으로서의 난폭함이나 잔인함, 천성적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독립적 사고 능력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유대인 생존자와 대면했을 때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제3국(신성로마제국과 독일 제국 이은 세 번째 단일국가라는 뜻으로, 히틀러가 집권한 1934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제국을 가리킴)의 상투적인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사이 무려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 통치가 그에게 주입한 사상적 언어가 여전히 ’귓가에 쟁쟁‘할 만큼, 아이히만은 자기 스스로 언어를 조직해가며 사물과 사태에 대해 파악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표현력 결핍은 사고력 결핍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신의 입장을 떠나 사고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의 주위로 그의 언어와 타인의 존재를 가로막는, 그리하여 대상의 참모습을 거부하게 만드는 견고한 벽이 둘러져 있다.“ 바로 이것이 나치의 전체주의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이다. 독립적 사고 능력과 판단 능력을 제거하고, 무심히 살인 컨베이어 벨트를 작동시킬 수 있는 ’아이히만‘을 수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눈사태가 일어났을 때 눈송이는 자기의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했던 폴란드 시인 스타니스와프 예지 레츠의 말처럼, 나치 정권하에서의 그 방대한 살인 기계를 작동시킨 것은 다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아이히만‘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다름 아닌 평범성이었다. 아이히만이라는 개인에게서 조금만 뒤로 물러나 보자. 어찌 보면 그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는 ’모범 노동자‘였다. 그가 맡은 임무는 유럽 각지의 유대인 천만 명을 수용소로 보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학살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범 노동자‘가 지닌 평범성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윤리적 판단력과 도덕적 책임감을 탈색시켰고, 그의 탁월한 업무 능력은 살인 기계의 높은 작동 효율로만 작용했다.그는 그저 ’원칙‘에 따라 깔끔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그에게 살인 그 자체는 대수롭지 않으나,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 된다고 믿었다.“그는 끝내 체포된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저 평범하게 해석했다. ”좋은 정부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고, 나쁜 정부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다. 나는 운이 나빴다.“ 이토록 평범한 아이히만의 모습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어느 시대나 ’아이히만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또 다른 저서인 <인간의 조건>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생각하지 않음-맹목적인 무모함, 끝을 모르는 망망함, 잡스럽고 공허한 진리로 변해버릴 뿐인 반복적인 암송-은 내가 보기에 우리 시대의 현저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내가 제안하는 것은 단순하다. 바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고하는 것이다. 증언과 증거가 너무나 강력했기에 1961년 연말, 아이히만은 예루살렘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62년 5월 31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시신은 화장해 지중해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