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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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탑방 창문에 핀 서리꽃 ♡ 서울의 겨울은 언제나 매섭다. 특히 산등성이 가까운 오래된 동네의 옥탑방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벽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곳에 노부부가 살았다. 남편 종수와 아내 화연. 둘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오래된 세월이 남긴 것은 작은 연금과 좁은 옥탑방뿐이었다. 방 안에는 작은 전기장판 하나, 그리고 지난여름 벼룩시장에서 값싸게 산 낡은 난방기 하나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전기세가 무서워 오래 틀어둘 수 없었다. 화연은 오랜 병을 앓고 있었다. 폐가 약해 겨울이면 숨이 가빠지고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밤이 되면 한 번 기침을 시작한 그녀는 마치 얼음 덩어리가 가슴에 들어앉은 듯 힘겨워했다. 종수는 그런 아내를 보며 늘 마음이 무거웠다. “여보, 미안해. 더 따뜻한 곳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화연은 늘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방이면 충분해요. 당신이 있으니까.” 그 말은 따뜻했지만, 종수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어느 날 새벽, 기온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다. 바람이 창문 틈 사이로 들어와 손끝이 금방 얼어붙을 정도였다. 화연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결국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기침 소리가 줄어든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너무 가늘고 약했다. 종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내의 차가워진 손을 잡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뜬 아내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차가운 겨울새벽의 유일한 장식, 창문 가득 맺힌 하얀 서리. 종수는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난방기 위로 가져갔다. 작은 열기에 손을 비비며 온기를 채웠다. 그리고 달라붙은 서리 위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세 줄… 허공에 피어나는 조용한 꽃송이들. 종수는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그렸다. 화연이 좋아하던 진달래, 코스모스, 동백. 추억 속 꽃들이 얼음 위에 하나씩 피어났다. 잠시 후, 창문은 작은 정원이 되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미소 지었다. “내일 아침, 당신이 이걸 보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새벽 해가 떠오르기 직전, 화연이 눈을 떴다. 기침을 누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그 순간 시선이 창문을 스쳤다. “어머…” 창문 가득 피어난 서리꽃. 차가운 창문 속에서 꽃잎은 빛을 머금어 아주 조용하지만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화연은 눈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여보… 이거 당신이 한 거죠?” 종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예쁘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면 해서… 밖에 꽃이 없는 겨울이라도, 아침에 꽃을 보면 좋을 것 같아서.” 화연의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평생 본 꽃 중에… 가장 따뜻해요.” 그 말에 종수의 목이 꽉 막혔다. 아내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은 이미 얼어 있었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따뜻한 봄 같았다. 그날 이후 종수는 매일 새벽 아내가 깨어나기 전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서리꽃을 그려 넣었다. 손이 얼어 감각을 잃는 날도, 창문이 하얗게 얼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날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가끔 옥탑방 창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추운 날, 창문에 꽃이 피었네. 누가 저런 섬세한 일을 하는 거지?”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 꽃들이 사랑으로 지켜낸 생의 마지막 정원이라는 걸. 그리고 어느 날, 병원이 아닌 집에서 치료받던 화연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 숨이 더 가빠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종수는 창문 앞에 섰다. 여느 때보다 서리가 가득했고, 손은 너무 차가워 움직이지도 않았다. “제발… 마지막까지 예쁘게 피어나 줘.” 그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꽃을 그렸다. 작고 작은 꽃잎이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는 속삭였다. “여보, 봄이 오고 있어.” 아침 햇살이 창문에 닿을 무렵, 화연은 힘겹게 눈을 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창문 가득 서리꽃으로 만든 큰 꽃다발이 보였다. 화연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는 너무 행복했어요.” 그 말이 끝나자 화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긴 숨이 흘러나왔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종수는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 이제는 아프지 말고… 따뜻한 곳에서 기다려. 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곧 갈게.” 창문 밖의 바람이 지나가며 서리꽃을 살짝 흔들었다. 마치 그 꽃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 수일 후, 동네 사람들은 옥탑방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아직도 서리꽃이 피어 있어… 신기하네.” 그러나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꽃들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라는 것을. 그가 손끝이 닳아 없어지도록 남겨둔 조용하고 깊은 사랑의 정원이라는 것을. 겨울의 옥탑방, 차가운 공기 한복판에서 서리꽃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때때로, 가장 조용한 사랑이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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